미국의 ‘전쟁부’ 선언: 콴티코 소집은 동아시아에 무엇을 예고하는가?

피트 헤그세스 전쟁부 장관

신임 미 전쟁부 장관 피트 헤그세스의 전례 없는 장성급 장교 소집과 ‘전쟁부’로의 개칭은 미국 국방 정책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 변화의 지적 토대는 중국의 역내 패권 장악을 저지하는 ‘거부 전략(Strategy of Denial)’에 있으며, 이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모든 자원과 역량을 집중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전략적 틀 안에서 대만은 단순히 방어선에 포함되거나 제외되는 수동적 객체가 아니라, 전체 전략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핵심적인 지렛목(fulcrum) 역할을 수행한다. 결과적으로 유럽과 중동 등 타 지역의 개입은 축소되며, 한국과 일본 등 역내 동맹국들에게는 전례 없는 수준의 방위비 분담과 역할 확대가 요구된다. 이는 한미 동맹을 포함한 미국 동맹 관계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중대한 도전이다.

콴티코 소집: '제도적 충격과 공포'의 서막

변화는 하나의 극적인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일방적 권위의 과시와 "장군들의 오징어 게임"

2025년 9월 25일, 헤그세스 장관은 약 800명의 현역 미군 장성급 장교 전원에게 콴티코 해병대 기지 긴급 회의 참석을 명령했다. 명확한 의제도 없이 전 세계 지휘관을 물리적으로 집결시킨 이 사건은 단순한 회의가 아니었다. 이는 정보 공유가 아닌 ‘제도적 충격과 공포’를 통해 장관의 절대적 권위를 과시하고, 군 조직을 개인적 권위 아래 종속시키려는 의도였다.

 

미 징군들의 오징어 게임(AI 생성)

이 지시는 군 최고위층에 가시적인 공포를 불러일으켰고, 일각에서는 이를 ‘장군들의 오징어 게임‘이라 부르며 생존을 건 숙청 과정의 시작으로 받아들였다. 헤그세스 장관은 취임 후 이미 다수의 고위 지휘관을 해임하고 정치적 리트머스 시험을 적용하는 등, 군 장교단을 행정부의 의제를 따르는 도구로 변모시키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왔다.

전쟁부 간판 변경

말이 중요하다: '국방부'에서 '전쟁부'로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를 ‘전쟁부(Department of War)’로 개칭한 조치는 이러한 변화의 상징이다. 헤그세스 장관은 이 조치의 목표가 “전사 기풍”을 회복하고 “미온적인 합법성이 아닌 최대의 살상력”으로 싸우는 데 있다고 밝혔다. 이는 군사력 사용의 문턱을 낮추고, 미국이 안정을 통한 억제에서 예측 불가능성을 통한 강압으로 전략을 전환하고 있음을 대내외에 알리는 강력한 신호다.

원칙과 설계: '힘을 통한 평화'와 '거부 전략'

콴티코의 충격 요법과 ‘전쟁부’의 부활 이면에는, 정교하게 설계된 전략적 원칙과 이론적 틀이 존재한다.

'힘을 통한 평화': 헤그세스 장관의 샹그릴라 선언

헤그세스 장관은 2025년 샹그릴라 대화 연설을 통해 새로운 국방 정책의 원칙을 천명했다. 그는 인도-태평양을 미국의 “우선순위 전구(priority theater)”로 명확히 지정하며,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강력하고 지속적인 개입 의지를 밝혔다.

핵심 메시지는 ‘힘을 통한 평화’의 달성이며, 이는 군사적 준비태세를 외교의 최우선 수단으로 삼겠다는 의미다. 그는 중국의 위협이 “현실이며, 임박했을 수 있다”고 경고하며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이러한 접근은 유럽 동맹국들이 방위비를 분담하면 아시아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명백한 거래적 논리와, ‘규칙 기반 질서’나 ‘민주주의’ 같은 가치보다 국익을 우선시하는 실용주의로 뒷받침된다.

엘브리지 콜비 (Elbridge A. Colby)

지적 설계자: 엘브리지 콜비와 '거부 전략'

헤그세스가 제시한 정치적 원칙의 핵심 설계자는 전 국방부 부차관보이자 ‘거부 전략’의 주창자인 엘브리지 콜비다. 그의 저서  거부 전략(The Strategy of Denial)은 현 행정부 국방 정책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

콜비의 핵심 주장은 미국의 최우선 목표가 중국의 아시아 역내 패권 장악 시도를 ‘거부(deny)’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공격 발생 후 보복하는 ‘응징 기반 억제’에서, 공격이 발생하는 순간 이를 물리칠 수 있는 ‘거부 기반 억제(denial-based deterrence)’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리프먼 갭(Lippmann Gap)’—미국의 과도한 전 지구적 공약과 ‘하나의 전쟁’만 감당할 수 있는 제한된 군사력 사이의 불일치—에 대한 냉정한 진단에서 출발한다. 결국, 아시아로의 집중은 선택이 아닌, 미국의 한계를 인정한 데서 비롯된 필연적인 ‘선택과 집중’이다.

대만: 서태평양 방어 전략의 지렛목

새로운 ‘거부 전략’의 중심에는 대만이 있다. 대만은 방어선에서 제외된 것이 아니라, 방어선 그 자체다. 콜비의 전략 틀에서 대만 방어는 미국 국방 정책의 최우선 과제다. 제1도련선에 위치한 대만의 지리적 위치는 이곳을 필수적인 ‘지렛목(fulcrum)’으로 만든다. 만약 대만이 중국에 넘어가면, 아시아에서의 미국 전방 방어 태세 전체가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헤그세스 장관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자신이 지켜보는 한 중국은 대만을 침공하지 못할 것”이라며, 현 행정부의 가장 강력한 대만 관련 공약을 밝혔다.

지렛목으로서의 대만

전례 없는 압박: "스스로를 고슴도치로 만들어라"

대만이 전략의 중심이 되었다는 것은, 동시에 엄청난 압박을 감수해야 함을 의미한다. 워싱턴은 대만이 자국 방어를 위해 현재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콜비는 청문회에서 대만이 GDP의 “10% 또는 그 근방”을 국방비로 지출해야 한다고 증언했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요구는 단순한 재정 목표를 넘어, “당신들이 스스로를 지킬 진지한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우리도 당신들을 지키는 데 진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냉엄한 메시지다. 미국은 대만이 스스로를 중국이 삼킬 수 없는 ‘고슴도치’로 만들기를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계산법: 동맹의 의무와 지정학적 충격파

미국의 전략적 ‘선택과 집중’은 전 세계 동맹 관계의 비용-편익 계산법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방위비 분담의 의무

‘리프먼 갭’을 메우기 위해, 행정부는 동맹국들에게 GDP의 3.5%에서 5%에 달하는 국방비 지출을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핵 억제나 장거리 타격 같은 최상위 역량을 제공하는 ‘역외 균형자’로 자리매김하고, 일본, 필리핀, 대만과 같은 최전선 동맹국들이 중국의 초기 공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맡기를 기대한다. 이는 동맹국들 사이에 상당한 “전략적 불안(strategic anxiety)“을 야기하고 있다.

유럽과 중동: 축소되는 미국의 역할

인도-태평양에 자원을 집중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의 미국의 역할은 축소된다. 헤그세스 장관은 유럽의 안보는 유럽이 책임져야 한다며 주둔 미군 감축까지 시사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대서양 안보 협정을 근본적으로 파기하는 도박이다. 중동에서는 대규모 지상군 개입 대신, 필요시 원격 타격에 의존하는 ‘계산된 불개입’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신 애치슨 라인'의 공포: 기로에 선 한미 동맹

이러한 큰폭의 전략적 재편 속에서, 한미 동맹은 1950년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신 애치슨 라인(New Acheson Line)’이라는 유령과 마주하고 있다.

에치슨 라인과(흰색) 제1도련선(노란 점선)

'신 애치슨 라인'이란?

‘신 애치슨 라인’은 공식적인 정책 용어가 아니라, 현재 미국의 전략 변화를 비판적으로 요약하는 용어다. 1950년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선언한 원조 ‘애치슨 라인’은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에서 한반도와 대만을 제외했고, 이는 북한의 남침에 대한 ‘잘못된 신호’로 작용했다는 역사적 비판을 받는다.

오늘날 거론되는 ‘신 애치슨 라인’은 콜비의 ‘거부 전략’과 미국의 군사적 한계 인식이 낳은 필연적 귀결로 해석된다. 이는 미군이 일본-대만-필리핀을 잇는 제1도련선 혹은 그 뒤의 제2도련선으로 방어선을 후퇴시키고, 한반도를 그 방어선 바깥에 두는 잠재적 시나리오를 의미한다. 미국은 ‘역외 균형자’로서 직접적인 지상 방어의 부담을 덜고, 한국이 대북 방어의 모든 책임을 지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주한미군 재배치: '신 애치슨 라인'의 현실화?

중국 중심의 전략에서, 북한 억제를 위해 설계된 대규모 주한미군 지상 병력은 이제 ‘과거의 유산’으로 간주된다. 한국의 재래식 군사력이 북한에 우위에 있으므로, 지상 방어는 한국군이 책임지고 미군 자산은 중국과의 분쟁에 재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주한미군 재배치 구상은 비평가들에게 ‘신 애치슨 라인’을 현실화하는 가장 구체적인 조치로 해석된다. 미 지상군 주둔은 분쟁 시 미국의 자동 개입을 보장하는 “인계철선(tripwire)” 역할을 해왔다. 이 인계철선을 제거하는 것은 미국의 안보 공약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다.

서울의 딜레마: 버려질 것인가, 휘말릴 것인가?

결국 한국은 두 가지 치명적인 선택지 사이에 놓이게 된다.

  • 방기(Abandonment): 미국의 방위비 증액 및 역할 확대 요구에 저항하면 ‘무임승차자’로 낙인찍혀 미군 철수로 이어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신 애치슨 라인’ 밖으로 밀려나는 시나리오의 핵심이다.

  • 연루(Entrapment): 미국의 요구에 순응하여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하면, 대만 유사시 중국의 자동적인 표적이 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차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단순한 비용 문제를 넘어, 한국의 이 ‘방기 대 연루’ 딜레마가 강제되는 결정적 변곡점이 될 것이다.

결론: 예측 불가능한 시대, 한국의 선택은?

가장 큰 위험은 미국의 성급한 ‘거부로의 돌진’이 중국의 선제공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미국의 거래적 접근법은 동맹국들이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다른 선택지를 모색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기 속에서 한국과 같은 동맹국들은 다음과 같은 전략적 대응을 모색해야 한다.

패러다임 전환의 인식: 미국의 전략적 초점이 중국으로 완전히 이동했으며, 과거의 안보 공약들이 이 새로운 렌즈를 통해 재평가될 것임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선제적인 기여 방안 제시: 미국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자국의 국방 투자가 역내 억제 목표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선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파트너십 다변화: 한미 동맹을 중심축으로 유지하되, 일본, 호주, 아세안 국가들과의 안보 및 경제 관계를 강화하여 단일 후원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보다 회복력 있는 안보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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