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북극에서의 분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극을 둘러싼 법적, 지리적 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북극의 물리적 공간을 정의하고, 주요 국가들을 식별하며, 주권과 자원, 항해 규칙의 기준이 되는 국제법, 특히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을 자세히 살펴본다.
경쟁의 장 정의: 북극의 다양한 경계
‘북극’은 하나의 단일체가 아니다. 기준에 따라 그 의미와 지정학적 중요성이 달라진다.
지리적 정의: 북극권(Arctic Circle)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북극권(Arctic Circle)이다. 이는 북위 66∘33′ 이상의 지역으로, 24시간 해가 지지 않는 백야나 해가 뜨지 않는 극야 현상이 나타나는 천문학적 경계다. 하지만 유라시아와 북미 대륙으로 둘러싸인 북극해(Arctic Ocean)를 중심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7월 평균 기온이 10℃인 등온선(수목 한계선)이나 영구 동토층의 범위 등 과학적 기준도 존재하는데, 이 경계들은 기후 변화로 인해 계속 변하고 있다.
북극권(Arctic Cicle)과 북극권 국가들
정치적 정의:북극 국가
북극권 내에 영토를 가진 8개의 북극 국가가 있다. 이들은 북극이사회 회원국으로 캐나다, 덴마크(그린란드),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러시아, 스웨덴, 미국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북극해에 직접 해안선을 맞댄 **5개의 북극 연안국(캐나다, 덴마크, 노르웨이, 러시아, 미국)**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양 영유권 분쟁의 핵심 당사국은 바로 이 5개국이기 때문이다.
해양법: 녹아내리는 바다에 UNCLOS 적용하기
‘해양의 헌법’이라 불리는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북극의 모든 해양 영유권 주장을 규율하는 핵심적인 법적 장치다.
모든 해양 영토의 출발점은 기선(Baseline)이다. 기선은 일반적으로 해안선의 가장 낮은 조수 지점(저조선)을 잇는 통상기선을 사용한다. 하지만 해안선이 매우 복잡하거나 해안선 가까이에 섬들이 줄지어 있는 경우, 해안의 바깥 지점들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직선기선을 설정할 수 있다. 이 직선기선 설정 기준이 북극 분쟁의 핵심 쟁점 중 하나다.
기선을 기준으로 국가는 다음과 같은 해양 관할권을 가진다.
내수(Internal Waters): 기선의 육지 쪽 수역으로, 영토와 동일한 완전한 주권이 인정된다. 외국 선박의 자유로운 통항권이 허용되지 않는다.
영해(Territorial Sea): 기선으로부터 최대 12해리까지의 수역이다. 타국 선박의 무해통항권(innocent passage)을 제외하고는 완전한 주권을 행사한다.
배타적 경제수역(EEZ): 기선으로부터 최대 200해리까지의 수역이다. 연안국은 이곳의 모든 천연자원(어업, 석유, 가스 등)을 탐사하고 개발할 독점적 권리를 가진다.
대륙붕(Continental Shelf): 연안국은 200해리까지의 해저 및 하층토(대륙붕) 자원에 대한 주권적 권리를 가진다. 만약 자국의 육지 영토가 200해리를 넘어 자연적으로 연장된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면, 최대 350해리까지 확장 대륙붕(ECS)을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법적 틀에서 ‘직선기선’은 단순한 기술적 규칙을 넘어 지정학적 도구로 활용된다. 캐나다나 러시아처럼 복잡한 해안선을 가진 국가는 이 제도를 활용해 광대한 해역을 내수로 선포하고, 외국 선박의 통항권을 제한하며 사실상 완전한 주권을 주장한다.
반면, 미국이 UNCLOS를 비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전략적 약점으로 작용한다. 미국은 확장 대륙붕 주장을 심사하는 대륙붕한계위원회(CLCS)에 공식적으로 서류를 제출할 자격이 없다. 러시아, 캐나다, 덴마크가 UN이 인정하는 과학적 절차를 통해 자국의 주장을 굳히는 동안, 미국은 이 중요한 경계 획정 과정에서 방관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구역 | 기선으로부터의 거리 | 연안국의 권리 | 외국의 권리 |
|---|---|---|---|
| 내수 | 기선의 육지 쪽 | 완전한 주권 | 통항권 없음 (역사적 권리 제외) |
| 영해 | 최대 12해리 | 완전한 주권 | 무해통항권 |
| 접속수역 | 12 ~ 24해리 | 제한된 집행권 (관세, 재정 등) | 항행의 자유 |
| EEZ | 최대 200해리 | 자원에 대한 주권적 권리 | 항행 및 상공비행의 자유 |
| 대륙붕 | 최대 200해리 (또는 그 이상) | 해저/하층토 자원에 대한 주권적 권리 | 상부 수역에서의 항행의 자유 |
지정학적 전쟁터: 경쟁적 주장과 항로
법 이론을 넘어, 이제 북극에서 가장 치열한 두 가지 지정학적 분쟁, 즉 해저 자원을 둘러싼 경쟁과 전략적 항로인 북서항로 문제를 살펴본다.
해저 경쟁: 로모노소프 해령 분쟁
로모노소프 해령은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출발해 북극해 중앙을 가로질러 그린란드와 캐나다까지 약 1,800km 뻗어 있는 거대한 해저산맥이다. 러시아, 덴마크, 캐나다는 모두 이 해령이 자국 대륙붕의 자연적 연장이라고 주장하며 그곳의 자원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로모노소프 해령과 각국의 대륭붕 청구
러시아: 가장 먼저 이 해령이 시베리아 대륙붕의 일부라고 주장하며 2001년부터 자료를 제출했고, 최근 CLCS로부터 주장의 과학적 타당성을 상당 부분 인정받는 권고를 받아 외교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덴마크 & 캐나다: 덴마크는 그린란드를 통해, 캐나다는 자국 영토를 통해 이 해령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북극점을 포함한 지역에서 세 국가의 주장이 서로 겹치는 상황이다.
여기서 CLCS의 역할이 중요하다. CLCS는 법원이 아닌 과학 기구다. 이들은 제출된 지질학적 데이터의 타당성을 검토할 뿐, 국가 간의 영유권 분쟁을 판결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CLCS의 권고는 협상 테이블에서 강력한 카드가 되지만, 최종적인 경계 획정은 관련국들의 외교적 협상을 통해 이루어져야만 한다. 러시아가 유리한 과학적 권고를 먼저 확보했기 때문에, 앞으로의 협상에서 덴마크와 캐나다는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북서항로: 내수인가 국제해협인가?
기후 변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캐나다 북극 군도를 통과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북서항로(Northwest Passage, NWP)의 상업적 가치가 커지고 있다. 이는 캐나다와 미국 간의 오랜 법적 분쟁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EEZ과 북극항로
캐나다의 입장: 캐나다는 직선기선을 설정해 북서항로를 자국의 ‘역사적 내수’ 로 간주한다. 내수에서는 캐나다가 모든 외국 선박의 통항을 통제하거나 금지할 수 있는 완전한 주권을 가진다.
미국의 입장: 미국과 유럽연합은 북서항로가 두 개의 공해를 잇는 ‘국제해협’ 이라고 주장한다. 국제해협이라면 모든 국가의 선박(군함 포함)이 자유롭게 지나갈 수 있는 ‘통과통항권(transit passage)’을 가진다.
이 분쟁은 단순히 북극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게 항행의 자유는 전 세계 해군의 기동성을 보장하는 핵심 원칙이다. 만약 미국이 캐나다의 주장을 인정한다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중국이 남중국해를 통제하려는 시도에 위험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이 문제에서 절대 물러설 수 없으며, 양국은 ‘의견 불일치에 동의’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관리하고 있을 뿐, 근본적인 해결은 요원한 상태다.
경제적 보상: 북극 자원 잠재력과 개발
지정학적 경쟁의 이면에는 막대한 경제적 이익이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권위 있는 평가에 따르면, 북극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전 세계 석유의 약 13%(900억 배럴)와 천연가스의 30%(1,669조 입방피트)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놀랍게도 이 자원의 84%는 바다 밑에 있다.
탄화수소자원 매장지와 매장확율
핵심은 이 자원이 불균등하게 분포한다는 점이다. 특히 천연가스는 대부분 러시아 영토 아래(서시베리아 분지, 동바렌츠 분지)에 집중되어 있다. 이 지질학적 현실이 북극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적인 전략을 설명하는 핵심 요인이다.
| 지질 분지 | 미발견 석유 (백만 배럴) | 미발견 천연가스 (십억 입방피트) | 관련 국가 |
|---|---|---|---|
| 서시베리아 분지 | 3,660 | 651,499 | 러시아 |
| 북극 알래스카 | 29,961 | 221,398 | 미국 |
| 동바렌츠 분지 | 7,406 | 317,558 | 러시아, 노르웨이 |
| 동그린란드 단층 분지 | 8,902 | 86,180 | 덴마크(그린란드) |
자료원:미국 지질조사국(USGS)
국가별 개발 프로젝트 및 활동
북극 국가들은 자원 잠재력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가 주도하는 보스토크 오일(Vostok Oil) 프로젝트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신규 유전 개발 사업이다. 또한 노바텍의 야말 LNG(Yamal LNG) 프로젝트는 이미 대규모 액화천연가스를 생산하며 북극항로의 경제성을 증명하고 있다.
미국: 환경단체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행정부는 2023년 알래스카의 코노코필립스 윌로우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이는 하루 최대 18만 배럴의 석유 생산을 목표로 한다.
노르웨이: 노르웨이는 바렌츠해에서 30년 이상 석유와 가스를 채굴해 온 성숙한 개발 모델을 가지고 있다. 기존 인프라를 활용한 점진적이고 안정적인 탐사와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서방의 제재가 오히려 러시아가 중국이나 인도 등 아시아 파트너와 협력하고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도록 부추기는 ‘제재의 역설’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서방의 영향력이 배제된, 러시아-중국 중심의 북극 경제 블록을 형성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