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대규모 국제 전쟁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 중 하나이다.
전쟁이 발발한 원인은 제1차 세계대전의 유산과 경제적 원인, 경제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베르사유 조약의 불만: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막대한 배상금, 식민지 상실, 군비 제한 등의 가혹한 제약을 받아 큰 불만을 품는다. 이는 독일 민족주의의 부상과 복수심을 자극했다.
국제연맹의 무능: 국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연맹은 주요 강대국들의 이익 충돌과 협력 부족으로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대공황의 영향: 1929년 시작된 대공황은 전 세계적으로 경제 불황을 초래하여 사회 불안을 심화시키고 극단적인 정치 세력의 등장을 부추겼다.
자원 경쟁: 일본, 이탈리아, 독일 등 후발 산업국들은 경제 성장을 위해 해외 식민지와 자원을 확보하려는 제국주의적 야망을 드러낸다.
극단적 민족주의와 전체주의의 부상: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 등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 사상이 등장하여 침략적인 대외 정책을 추진한다.
팽창주의 정책: 독일의 히틀러는 ‘생존 공간’ 확보를 주장하며 주변국 침략을 노골화했고, 일본은 ‘대동아 공영권’ 건설을 내세워 아시아 침략을 감행했으며,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로마 제국의 재건을 꿈꾸며 세력 확장을 시도했다.
유화 정책의 실패: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팽창주의 정책에 대해 소극적인 유화 정책을 취했으나, 이는 오히려 히틀러의 침략 야욕을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
추축국의 형성: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상호 이익을 위해 추축국을 형성하여 세력을 확장하고 국제 질서를 위협했다.
소련의 부상과 견제: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경계심도 국제 정치의 불안 요인이었다.
중국의 국력 약화: 중국은 군벌 간의 내전 등으로 국력이 약화되어 일본의 침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세부내용은 타임라인 참조
1931년: 일본, 만주사변 발발
1933년: 히틀러, 독일 총리 취임
1935년: 이탈리아, 에티오피아 침공
1936년: 독일-이탈리아 로마-베를린 추축 형성, 독일-일본 반코민테른 협정 체결
1937년: 일본, 중일 전쟁 발발
1938년: 독일, 오스트리아 병합 (안슐루스), 뮌헨 협정으로 체코슬로바키아 주데텐란트 합병
1939년: 독일, 체코슬로바키아 전체 점령,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 체결,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영국과 프랑스의 대독 선전포고, 소련의 폴란드 침공
1940년: 독일, 서유럽 침공 (프랑스 함락, 덩케르크 철수), 이탈리아 참전, 영국 본토 항공전, 삼국 동맹 조약 체결
1941년: 독일, 소련 침공 (바르바로사 작전), 일본,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 발발, 미국의 대일 선전포고, 독일과 이탈리아의 대미 선전포고, 무기대여법 시행
1942년: 미드웨이 해전, 엘 알라메인 전투, 과달카날 전역, 횃불 작전
1943년: 북아프리카 추축군 항복,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 이탈리아 항복, 테헤란 회담
1944년: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 (D-데이), 파리 해방, 바르샤바 봉기
1945년: 얄타 회담, 히틀러 자살, 독일 항복 (V-E Day), 포츠담 회담, 미국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소련의 대일 선전포고, 일본 항복 선언 (V-J Day), 일본 공식 항복, 유엔 창설
추축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연합국: 미국, 영국, 소련, 중국, 프랑스, 폴란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 비극적인 사건이었으며, 전후 세계 질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거대한 전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