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 회담 #03 한반도 40년 식탁통치 구상 등장

 ‘적절한 시기’라는 모호한 표현 속에 숨겨진 신탁통치 의도는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 극심한 혼란과 분열(찬탁과 반탁 대립)을 야기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테헤란 회담에서는 직접적인 의제는 아니었지만, 전후 한반도의 처리 문제, 특히 신탁통치(trusteeship) 구상이 처음으로 연합국 정상 차원에서 논의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이로 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이 ‘적절한 시기(in due course)’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명시된 배경에는 이미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던 전후 식민지 지역에 대한 국제 신탁통치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루스벨트는 1943년 3월 영국 외무장관 이든과의 회담에서 처음으로 한국에 대한 국제 신탁통치 실시 구상을 공식적으로 제기했으며 , 카이로 회담에서도 장제스에게 이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오랜 일본 식민 통치로 인해 즉각적인 자치 능력이 부족하며 , 독립을 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카이로 선언

테헤란 회담에서 루스벨트는 스탈린과의 회담 중 카이로 회담의 합의 사항을 설명하면서, 한국이 완전한 독립을 획득하기 전에 약 40년 정도의 신탁통치(훈련 기간)를 거치게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스탈린은 이 제안에 대해 원칙적으로 동의의 뜻을 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얄타 회담(1945년 2월)에서 루스벨트가 신탁통치 기간을 20~30년으로 제안했을 때, 스탈린은 기간이 짧을수록 좋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합동 참모회의

미국이 한반도 신탁통치를 구상했던 주된 이유는 전후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세력 균형 유지와 관련이 깊었다. 특히, 전후 소련의 영향력이 한반도로 확장되는 것을 견제하고, 미국 주도의 안정적인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적 고려가 작용했다. 신탁통치는 한국의 즉각적인 독립을 유보시키는 대신, 미국, 소련, 중국, 영국 등 관련 강대국들이 공동으로 한반도 문제에 관여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함으로써 특정 국가(특히 소련)의 단독적인 영향력 행사를 막을 수 있는 방안으로 여겨졌다

신탁통치 반대 시위

그러나 이러한 신탁통치 구상은 한국 민족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적절한 시기’라는 모호한 표현 속에 숨겨진 신탁통치 의도는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 극심한 혼란과 분열(찬탁과 반탁 대립)을 야기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테헤란 회담에서의 초기 논의는 이후 얄타 회담과 모스크바 3상회의(1945년 12월)를 거치며 구체화되었고, 결국 한반도 분단 고착화라는 비극적인 역사로 이어지는 단초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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