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법무부, 파월 의장 형사 수사 착수…”금리 인하 거부에 대한 정치적 보복” 해석 지배적 韓·英·EU 등 주요국 총재 “독립성 수호” 이례적 공동 성명…일본은행은 불참해 ‘외교적 고립’ 자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향해 ‘형사 수사’라는 전례 없는 칼을 빼 들었다. 이에 맞서 전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들이 파월 의장을 지지하는 연대 성명을 발표하며 국제 금융계가 트럼프 행정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본은행(BOJ)만이 유일하게 침묵을 지켜 논란이 되고 있다.
사건의 발단: '리모델링 비용' 빙자한 통화정책 개입
지난 1월 11일, 파월 의장은 미 법무부로부터 수사 통보를 받았음을 공개했다. 혐의는 지난해 여름 의회 청문회에서 연준 본부 리모델링 예산과 관련해 위증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워싱턴과 월가의 시각은 냉소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경기 부양을 위해 연준에 공격적인 금리 인하를 요구해왔다. 파월 의장이 “물가 안정이 우선”이라며 이를 거부하고 독자 노선을 고수하자, 꼬투리 잡기 식 별건 수사를 통해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실상 행정권력을 동원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결정권을 장악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글로벌 금융 리더들의 반란: "독립성 훼손 좌시 않겠다"
트럼프의 노골적인 압박에 국제 금융 리더들은 즉각 반응했다. 13일,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주도로 앤드류 베일리 영란은행(BOE) 총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티프 맥클렘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 등 주요국 중앙은행 수장들이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파월 의장에 대한 “전면적인 연대”를 선언하며, “법의 지배와 민주적 설명책임을 존중하되,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은 타협할 수 없는 가치”라고 못 박았다. 현직 미국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으나, 미국의 우방국들이 연합하여 미 행정부의 조치에 집단 항명한 것은 외교사적으로 매우 드문 일이다.
홀로 빠진 일본: 국익인가, 굴종인가
이번 공동 성명 사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일본의 부재다. G7(주요 7개국)의 일원이자 미국의 핵심 동맹인 일본의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일본은행 측은 참여 의사가 있었으나, 일본 정부(관저)의 강한 만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대미 무역 흑자 문제와 안보 분담금 문제로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의 심기를 건드리는 성명에 참여할 경우, 관세 폭탄이나 안보 공약 후퇴 등의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트럼프 리스크’를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가는 혹독하다. 국제 금융계에서는 일본이 “단기적 안위를 위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라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핵심 가치를 외면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흔들리는 달러 패권과 G7의 균열
이번 사태는 단순한 인사 문제를 넘어 국제 금융 질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달러 신뢰도 하락: 미 대통령이 중앙은행장을 수사 대상으로 삼는 모습은 달러화의 안정성과 미국의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금(Gold)과 비트코인으로 이동하는 조짐이 보인다.
서방 동맹의 균열: 미국 대 반(反)트럼프 연대로 나뉜 이번 구도는 G7 체제의 결속력 약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눈치를 보며 이탈한 일본과,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유럽·한국·영연방 국가들 간의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트럼프 행정부가 파월 의장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수록, 글로벌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침묵을 택한 일본이 향후 국제 무대에서 어떤 외교적 청구서를 받게 될지도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