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 회담은 바로 직전에 열린 카이로 회담(1943년 11월 22-26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카이로에서는 루스벨트, 처칠, 그리고 중화민국의 장제스(Chiang Kai-shek) 총통이 만나 주로 아시아-태평양 전선에서의 대일 전략과 전후 아시아 처리 문제를 논의했다.

테헤란 회담후 촬영(스탈린, 루스벨트,처
테헤란 회담의 역사적 맥락과 중요성
1943년 말, 제2차 세계대전은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었다. 연합국은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추축국 세력을 성공적으로 몰아냈으며, 시칠리아 상륙(허스키 작전)과 이탈리아 본토 침공을 통해 남부 유럽에서의 공세를 강화하고 있었다. 동부전선에서는 소련군이 스탈린그라드 전투(1943년 2월 종료)와 쿠르스크 전투(1943년 7-8월)에서 나치 독일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며 전략적 주도권을 확보한 상태였다. 이러한 군사적 성공은 연합국 지도자들에게 전쟁의 최종 승리를 구체화하고 다가올 전후 세계 질서를 구상해야 할 필요성을 강력하게 제기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43년 11월 28일부터 12월 1일까지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역사적인 회담이 개최되었다. 이 회담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처음으로 미국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 영국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총리, 그리고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 서기장, 소위 ‘빅3(Big Three)’로 불리는 연합국의 최고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최초의 대면 정상회담이었다.
이전까지 서신, 전보, 또는 외무장관 등 대리인을 통한 간헐적인 소통에 의존했던 연합국 최고 지도자들은 테헤란에서 직접 얼굴을 맞대고 전쟁 수행 전략과 전후 구상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진행할 수 있었다. 처칠은 이 회담을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세속적 권력의 집중을 보여준 자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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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의의
테헤란 회담은 여러 측면에서 중대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첫째, 연합국의 대(對)독일 군사 전략, 특히 오랫동안 논의되어 온 제2전선(Second Front) 개설 문제에 대한 최종 합의를 도출했다.
둘째, 독일 패망 이후 소련의 대일(對日) 전쟁 참전을 약속받음으로써 태평양 전쟁의 종결을 앞당기는 데 기여할 발판을 마련했다.
셋째, 전후 독일 처리 문제, 폴란드 국경 조정, 그리고 미래의 국제 평화 기구인 국제연합(United Nations, UN) 창설 구상 등 전후 세계 질서의 밑그림을 그리는 중요한 논의들이 이루어졌다.
마지막으로, 테헤란 회담은 이후 얄타 회담(1945년 2월)과 포츠담 회담(1945년 7-8월)으로 이어지는 연합국 정상 외교의 서막을 열었으며, 이 과정에서 드러난 강대국 간의 이해관계 충돌과 협력의 양상은 냉전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했다.
카이로 회담 이후 개최 배경 및 목적
테헤란 회담은 바로 직전에 열린 카이로 회담(1943년 11월 22-26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카이로에서는 루스벨트, 처칠, 그리고 중화민국의 장제스(Chiang Kai-shek) 총통이 만나 주로 아시아-태평양 전선에서의 대일 전략과 전후 아시아 처리 문제를 논의했다. 특히 일본이 점령한 영토(만주, 대만, 펑후 제도 등)의 중화민국 반환과 ‘적절한 시기(in due course)’에 한국을 독립시킨다는 내용 등이 포함된 카이로 선언(1943년 12월 1일 발표)은 이 회담의 주요 결과물이었다.
스탈린의 불참
그러나 카이로 회담에는 유럽 전선의 핵심 당사자인 소련의 스탈린이 참여하지 않았다. 스탈린은 장제스와의 만남을 꺼렸으며, 무엇보다 유럽에서의 전쟁 수행, 특히 독일을 압박하기 위한 제2전선 개설이라는 시급한 현안은 스탈린 없이는 최종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문제였다. 따라서 카이로 회담 직후 루스벨트와 처칠은 스탈린과의 만남을 위해 테헤란으로 이동했다. 루스벨트는 특히 스탈린과의 직접적인 대면을 통해 개인적인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련의 지속적인 대독 항전 의지를 확인하며 향후 대일전 참전까지 유도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테헤란 회담의 목적
결론적으로 테헤란 회담은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목적들을 가지고 개최되었다.
첫째,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앞당기기 위해 연합국, 특히 ‘빅3’ 간의 공동 군사 전략을 최종적으로 조율하고 확정하는 것,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사안은 서유럽에서의 제2전선 개설 시기와 규모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둘째, 독일 패망 이후 소련이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도록 설득하고 그 약속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셋째, 전쟁 이후의 세계 질서를 구상하며 독일 처리 문제,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의 국경 문제, 그리고 국제연합(UN) 창설과 같은 주요 정치적 현안들에 대한 초기 입장을 조율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논의들을 통해 연합국 간의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전시 협력을 더욱 공고히 다지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