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푸틴은 왜 지금 미국을 시험하려 하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5년 8월 15일 금요일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 위치한 엘멘도르프 리처드슨 합동기지 내 아크틱 워리어 이벤트 센터에서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백악관)

6개월째 이어지는 이란전쟁, 모스크바는 미국의 ‘전략적 소진’을 읽기 시작했다

미국의 이란전쟁이 중동을 넘어 유럽의 안보 지형까지 흔들기 시작했다.

미 정보당국의 최근 비밀 평가에 따르면 러시아 크렘린은 6개월째 계속되는 미국의 이란전쟁으로 미국의 군사적 대응 능력이 약화됐으며, 이를 미국의 이해관계와 유럽 동맹국에 대한 압박을 확대할 기회로 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단순한 러시아의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미국 정보당국이 실제로 러시아 지도부가 미국의 군사적 소진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추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리고 그 정보평가 직후 존 랫클리프 CIA 국장이 비밀리에 모스크바로 향했다.

CIA 국장은 왜 모스크바로 갔나

존 랫클리프 CIA 국장은 지난 8월 25일 미군 C-17 수송기를 타고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CIA 국장의 러시아 방문은 2021년 윌리엄 번스 당시 CIA 국장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경고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찾은 이후 처음이다.

랫클리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직접 만나지는 않았지만 세르게이 나리시킨 러시아 해외정보국(SVR) 국장 등 러시아 정보기관 관계자들을 만났다.

존 랫클리프 CIA 국장
존 랫클리프 CIA 국장

러시아 측도 회동 사실 자체는 인정했다.

그러나 이번 방문의 배경에는 최근 미국 정보기관이 입수한 더욱 민감한 평가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보당국은 크렘린이 이란전쟁 때문에 미국의 군사력이 분산되고 무기 재고가 감소하면서 워싱턴의 개입 능력이 약화됐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사안을 알고 있는 한 관계자는 러시아의 판단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미국은 소진됐고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 러시아의 평가라는 것이다.

랫클리프는 러시아 측에 우크라이나전쟁을 크게 확대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러시아가 전쟁을 확대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더욱 강하게 지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문제는 러시아의 판단에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안을 단순한 미·러 정보전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미국의 실제 무기 재고에 상당한 압박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전쟁은 이미 6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중동에서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을 요격하기 위해 Patriot를 비롯한 막대한 양의 방공 미사일이 사용됐고, 미국은 유럽에 배치돼 있던 일부 무기까지 중동으로 이동시켰다.

AP는 8월 27일 미 국방 관계자와 NATO 관계자를 인용해 유럽 내 미국의 Patriot 요격미사일 재고가 사실상 ‘위험 수준을 넘어섰다(beyond critical)’​고 보도했다.

문제는 Patriot만이 아니다.

Patriot 등 방공체계뿐 아니라 Tomahawk 순항미사일과 ATACMS 같은 공격용 정밀무기의 재고에도 압박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은 동시에 세 개의 전선을 관리해야 한다.

  • 중동에서는 이란과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러시아를 억제해야 한다.
  • 인도태평양에서는 중국과의 잠재적 충돌에 대비해야 한다.

따라서 핵심 문제는 미국이 군사적으로 약한가가 아니다.

세 전선을 동시에 감당할 충분한 여유 전력이 남아 있는가가 문제다.


러시아가 원하는 것은 NATO와의 전면전이 아닐 수도 있다

미국 정보기관이 우려하는 시나리오 역시 러시아의 NATO 전면 침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훨씬 위험한 것은 회색지대다.

사이버 공격, 군사시설에 대한 사보타주, 드론 침투, 영공 침범, 제한적인 군사 도발과 같은 행동을 통해 NATO가 실제로 어디까지 대응할 것인지를 시험하는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 중요한 질문은 간단하다.

미국은 정말 유럽을 위해 다시 전쟁에 뛰어들 것인가.

그리고 지금처럼 미국이 중동에서 장기전에 묶여 있다면 그 질문을 시험해 볼 유혹은 커질 수 있다.

최근 미국 정보당국 역시 푸틴이 NATO의 결속과 미국의 대응 의지를 확인하기 위해 제한적인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위험은 러시아가 유럽을 정복하려 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러시아가 NATO의 억지력에 작은 균열이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려 할 가능성에 있다.

이란전쟁은 사실상 미국의 글로벌 억지력을 시험하고 있다

여기서 이란전쟁의 전략적 의미가 달라진다.

처음 이란전쟁은 중동의 전쟁이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지금 이 전쟁은 미국이 동시에 몇 개의 지역에서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글로벌 스트레스 테스트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를 관찰하는 것은 이란만이 아니다.

러시아와 중국도 미국이 얼마나 많은 미사일을 사용하고 있는지, 항공모함이 얼마나 오래 중동에 묶여 있는지, 유럽과 아시아에 남아 있는 무기 재고가 어느 정도인지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을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요청에도 이란에 대한 압박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았다.

동시에 러시아가 사용하는 Shahed 계열 공격 드론의 공급망에서는 중국산 엔진과 전자부품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중국이 러시아나 이란과 공식적인 군사동맹을 구축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미국과 경쟁하는 국가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미국의 전략적 부담을 증가시키고 있다.

‘미국의 힘’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여유’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상황을 곧바로 미국 패권의 붕괴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

그러나 억지력은 보유한 군사력의 총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상대방이 판단하는 것은 다음 질문이다.

지금 이 순간 미국이 실제로 개입할 수 있는가.

이란전쟁 이전 미국은 러시아·중국·이란에 각각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위기가 동시에 발생하면 계산법은 달라진다.

Patriot 한 발은 중동에서 사용되는 순간 유럽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Tomahawk 한 발 역시 이란을 공격하는 순간 태평양 전쟁 예비재고에서 사라진다.

항공모함이 중동에 머무르는 동안 같은 항공모함은 서태평양에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군사 전략에서 말하는 기회비용이다.

세 개의 수도가 같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 워싱턴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변화는 군사력 자체의 감소보다 상대국의 인식 변화일 가능성이 있다.

테헤란은 장기전을 선택하고 있다.

베이징은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이란을 압박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미국 정보당국에 따르면 모스크바는 미국이 이란전쟁으로 소진됐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세 나라가 완전히 같은 전략을 공유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세 나라 모두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은 동시에 몇 개의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불확실해지는 순간 억지력은 약해진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이 현재 러시아가 시험하려는 영역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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