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위기와 대변혁의 시대에 권력이 대중을 지배하는 연금술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욱 정교하게 작동한다. 앞서 살펴본 칸트의 인식론과 금융 신용의 허구성은 권력이 대중의 현실 인식을 조작하는 철학적·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 주제에서 논의했듯이, 권력은 현대적 세계관과 개인주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여 대중을 파편화된 존재로 설계하였다. 불행과 위기의 책임을 사회 구조가 아닌 개인의 내면으로 돌리게 만듦으로써 대중을 체제 순응적 주체로 길들이고 심리적 지배를 완성한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입장에서는 대중을 각자도생의 상태로 파편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고립된 개인들은 통제하기에는 용이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체제를 유지하고 방어하는 데 필요한 집단적인 동원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파편화된 개인들을 다시 하나의 거대한 틀 안에 묶어 체제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만들 강력한 허구적 공동체를 필요로 한다. 이것이 바로 네 번째 주제인 학교 교육을 통한 민족국가(Nation-State)의 발명이며, 나아가 현대 미디어와 정치·종교 세력이 결탁하여 대중의 인식을 재학습시키는 현대적 통제 메커니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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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프롤로그: 다극화 시대의 도래와 권력의 작동 기제
- 1. 우리는 진짜 세상을 보는가: 칸트 인식론과 권력의 조작 기제
- 2. 화폐와 금융의 본질 신용이라는 허구는 어떻게 물리적 권력이 되었는가
- 3.개인과 행복의 발명: 체제 순응적 주체의 탄생과 심리적 지배
- 5.권력의 작동 메커니즘:최종적으로 허구가 실재를 지배하는 체제의 완성
학교의 본질: 체제 순응을 위한 제도적 교육
학교의 본질은 순수한 지식을 습득하는 장소가 아니라, 체제 유지를 위해 설계된 제도적 교육 기관이다. 이는 피교육자를 권력의 의도에 따라 학습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과거 인류 역사에서 실질적인 배움은 학교가 아닌 삶의 현장에서 도제식으로 이루어졌다. 의술을 배우고자 한다면 병원에서 숙련자의 경험을 직접 사사하며 실무 지식을 습득하였다. 그러나 현대의 학교는 이러한 실무 지식의 전달보다 권력이 설계한 민족국가라는 허구를 주입하는 데 집중한다. 학교는 제도적인 교과 과정을 통해 대중의 사고 범위를 제한하여, 본래 실재하지 않는 상상의 공동체인 국가를 절대적인 실체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의무 교육의 기원: 전쟁 사회와 병영식 훈련
무상 의무 교육(Compulsory public schooling)을 최초로 도입한 사회들의 역사적 기원을 살펴보면 공교육 제도의 목적이 명확해진다. 학교는 대중의 주체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적 목적과 전쟁에 동원할 복종적인 신민을 육성하기 위해 고안된 시스템이다. 역사상 아동에게 강제적인 의무 교육을 실시했던 대표적인 세 사회는 다음과 같다.
- 스파르타(Sparta):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 중 유일하게 국가 주도의 의무 교육을 실시하였다. 7세 안팎의 아동을 부모로부터 격리하여 아고게(Agoge)라 불리는 병영 학교에 수용하였다. 이곳에서 아동들은 엄격한 규율과 통제를 통해 오직 국가의 안위만을 위해 헌신하는 전사로 양성되었다.
- 아즈텍(Aztecs): 정복 전쟁을 반복하던 아즈텍 사회는 모든 남성 아동에게 의무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계급에 따라 교육 기관을 구분하였다. 평민 자녀들이 다니는 텔포치칼리(Telpochcalli)는 전사 양성을 목표로 삼았으며, 어린 나이부터 공동생활을 하며 군사 훈련을 받고 국가의 전쟁과 제례에 동원되었다. 귀족 자녀를 위한 기관인 칼메카크(Calmecac)는 군사 전략과 행정 등을 교육하여 지배 계층으로서의 충성심을 고취하였다.
- 프로이센(Prussia): 현대 공교육 제도의 직접적인 모태이다. 1806년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나폴레옹 군대에 대패한 프로이센은 국가 재건을 위해 군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국민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프로이센은 학교를 통해 행동의 표준화와 규율을 훈련하였다. 모든 아동에게 동일한 언어와 표준화된 역사를 주입하여 인위적인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였으며, 교실 내의 열 맞추기와 종소리에 따른 일과 통제 등 군대식 행동 양식을 체득하게 하였다.
이 세 사회의 공통점은 외부 세력과의 경쟁과 영토 확장을 위해 국가 역량을 집중했던 전쟁 체제였다는 점이다. 현대 공교육의 기반이 된 학교 시스템은 대중이 국가의 필요에 따라 전장에 나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병영의 연장선으로 기능하였다.
세뇌 메커니즘: 심리적 불안과 허구적 기억의 이식
3편에서 논의한 것처럼, 현대 권력은 개인의 심리적 내면을 다스리는 방식으로 지배를 공고히 한다. 학교가 학생을 국가의 도구로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심리적 통제 방식은 다음과 같은 3단계 과정을 거친다.
교육의 첫 단계는 정서적 보호자인 부모로부터 아동을 물리적으로 격리하는 것이다. 가정 내에 머무는 아동은 내면적 안정감을 지니기 때문에 외부 권위에 의문을 품거나 저항할 수 있다. 그러나 제도적 공간에 강제로 분리된 아동은 일시적인 불안을 느끼게 되며, 이 취약한 심리 상태에서 외부에 존재하는 권력의 규칙에 쉽게 순응하게 된다.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아동은 생존과 적응을 위해 의지할 대상을 찾게 되고, 해당 공간의 대리 권력자인 교사를 신뢰하도록 유도된다. 이 단계가 지속되면 교사가 전달하는 이념과 지식 체계는 비판 없이 수용되며, 아동은 스스로 성찰하기보다 주어지는 지시와 평가 기준을 따르는 태도를 내면화한다.
권위에 순응하는 태도가 형성되면 학교는 역사와 언어 등의 교과 과정을 통해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한다.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국가를 무조건 수용해야 할 절대적 실체로 믿게 만드는 허구적 기억을 이식하는 과정이다. 과거 인류는 자신이 직접 교류하는 좁은 지역 공동체에 자연스러운 소속감을 느꼈으나, 학교 교육을 거친 대중은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타인들조차 같은 민족이라 믿으며 국가 시스템의 유지와 희생에 자발적으로 동참하게 된다.
결론: 허구적 공동체로부터의 탈피
결과적으로 학교 교육을 통한 민족국가의 발명은 지식인을 양성하는 과정이라기보다, 대중의 상상력을 통제하여 국가라는 허구에 복종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3편에서 다룬 두 번째 세계관(현대적 세계관)이 개인을 파편화하여 사회적 무기력 상태에 빠뜨렸다면, 4편의 교육 시스템은 그 무기력해진 개인들을 국가라는 틀 속에 다시 묶어 체제에 순응하는 주체로 완성한다.
우리는 이러한 국가와 교육의 개념들이 권력에 의해 주조된 제도적 산물임을 인지하고, 인류의 진정한 번영과 만개를 의미하는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성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