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권력이 대중을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메커니즘은 과거의 방식과 상이하다. 인류가 공동체적 유대와 나눔을 통해 행복을 정의했던 것과 달리, 현대 권력은 개인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대중을 파편화된 존재로 재설계하였다.
함께보기
- 0. 프롤로그: 다극화 시대의 도래와 권력의 작동 기제
- 1. 우리는 진짜 세상을 보는가: 칸트 인식론과 권력의 조작 기제
- 2. 화폐와 금융의 본질 신용이라는 허구는 어떻게 물리적 권력이 되었는가
- 4.국가와 교육 시스템: 민족국가의 이데올로기적 기능과 대중 통제
- 5.권력의 작동 메커니즘:최종적으로 허구가 실재를 지배하는 체제의 완성
여기서 파편화(Fragmentation)란 본래 하나로 결속되어 있던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구성원들이 조각처럼 흩어져 개별화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권력이 대중을 파편화한다는 것은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적 유대감을 약화시키고, 인간을 타인과 단절된 채 각자도생하는 고립된 단위로 분리하는 통제 기법을 뜻한다.
인류 역사에서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는 독립된 개인이라는 개념은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았다. 근대 이전의 행복은 공동체적 영역에 속해 있었으며, 현대의 파편화된 개인주의는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대중 통제를 위해 기획된 제도적 산물에 가깝다. 개인과 행복의 의미가 변천해 온 과정은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분석할 수 있다.
과거: 공동체적 행복과 연대
과거 인류에게 행복은 집단적인 영역에 속하였다. 당시의 공동체적 행복은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특징을 지녔다.
나눔과 관대함: 과거 인류에게 행복이란 타인에게 관대함을 베풀고 결속을 다지는 행위를 의미하였다. 우연히 막대한 부를 얻게 되더라도 이를 사적으로 은닉하거나 저축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부를 사용하여 공동체 전체를 위한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공동체 내의 평판과 재분배: 막대한 부를 잔치에 소모했던 이유는 당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 공동체 내의 평판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얻은 부를 통해 공동체 구성원이 혜택을 받고 다 함께 안정을 누리는 것 자체가 과거 사람들이 추구하던 삶의 목적이었다. 서양 고대 아테네의 부유한 시민들이 사재를 털어 공공 제전을 후원했던 리투르기아(공공 봉사)나, 전통 동양 사회에서 대소사와 마을 잔치를 통해 부를 끊임없이 재분배했던 향약의 전통이 이를 증명한다.
- 개인의 부재와 추방의 공포: 과거에는 가족이나 주변 세계와 분리된 독립적인 개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공동체가 안정되지 않으면 자신도 행복할 수 없다고 인식하였다. 공동체와의 결속이 곧 생존이자 삶의 전부였기 때문에, 과거 사회에서 내려질 수 있는 가장 가혹한 형벌은 물리적 처형보다 공동체로부터의 추방이었다. 아테네의 도편추방제나 전통 사회의 출향처럼 공동체와 단절되는 것은 곧 생존 기반의 상실을 의미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오늘날 자본을 축적하여 자신만의 안위를 챙기고 개별화된 이익을 좇는 모습은 인류 역사상 이례적인 현상이다.
현대: 개인주의의 발명과 통제 기제
근대 자본주의 체제가 확립되면서 권력은 대중의 내면을 재설계하기 시작하였다. 현대 권력은 과학과 심리학의 틀을 빌려 개인주의를 대중에게 주입하였다. 이 이데올로기는 인간을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형성된 기억을 생성하는 시냅스의 결합체로 규정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다고 인식하게 되며, 분노나 우울 같은 삶의 문제가 사회 구조가 아닌 개인의 내부, 즉 뇌나 시냅스의 화학 반응에 원인이 있다고 수용하게 된다. 권력이 이처럼 개인이라는 개념을 주입한 데에는 대중을 지배하기 위한 세 가지 목적이 존재한다.
노동의 강제와 부의 창출: 과거 사회에서는 막대한 부를 사적으로 축적하는 것을 경계하고 함께 소비했지만, 현대의 개인은 자신의 운명과 성공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 아래 지속적으로 노동한다. 대중이 개인의 안위와 성공을 좇아 자발적으로 노동을 지속하게 함으로써 체제의 실질적인 부를 창출하는 것이 근본적인 목적이다.
집단행동의 차단과 고립: 개인주의는 대중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통제 기제로 작동한다. 불행의 원인이 시스템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 부족에 있다고 믿기 때문에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연대하지 못한다. 사회적 모순에 직면했을 때 파편화된 개인들은 체제에 맞서는 집단행동을 취하는 대신, 사적 공간에 고립되어 말초적인 자극이나 디지털 매체에 의존하는 방식을 택하게 된다.
권위자에 대한 의존성 강화: 과거 인간은 심리적 고통을 겪을 때 자연을 접하거나 이웃과 대화하며 마음을 회복하였다. 하지만 현대 시스템은 대중이 내면적 고통을 겪을 때 스스로 회복할 주체성을 약화시키고, 정신의학자나 심리학자 등 체제가 공인한 전문가를 찾아가 약물과 치료에 의존하도록 구조화한다.
세계관의 충돌: 통제 불가능성과 통제의 환상
개인과 행복의 의미가 과거의 공동체 중심에서 현대의 파편화된 개인으로 변천한 배경에는 인간의 운명 통제력을 둘러싼 두 가지 상반된 세계관의 충돌이 자리 잡고 있다.
제1의 세계관(과거): 통제 불가능성과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과거 사람들은 자연이나 운명이 세상을 지배하므로 인간에게는 이를 온전히 제어할 주체성이 부족하다고 인식하였다. 이러한 통제 불가능성의 인식은 인간에게 심리적 해방감을 부여하였다. 미래를 완벽히 통제할 수 없었기에 사람들은 불확실한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기보다 주어진 현재에 충실한 에우다이모니아(번영과 만개)를 추구하였다. 또한 삶의 불행을 개인의 결함으로 돌리지 않았기에 불합리한 구조에 직면했을 때 타인과 연대하여 체제에 저항하는 집단행동의 동력을 지닐 수 있었다.
제2의 세계관(현대): 통제의 환상과 사회적 무기력 반면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두 번째 세계관은 인간을 시냅스의 결합체로 환원하며, 성찰과 치료를 통해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고 운명을 제어할 수 있다고 교육한다. 하지만 이는 대중을 순응시키기 위한 기제이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은 삶의 문제와 불행의 책임을 사회 시스템이 아닌 온전히 개인에게 돌리게 만든다. 그 결과 대중은 서로 연대하여 세상을 바꿀 능력을 상실한 채 사회적 무기력 상태에 놓인다.
세계관의 충돌: 통제 불가능성과 통제의 환상
대중은 교육 시스템을 통해 이 두 번째 세계관이 과학적 진리라고 수용하도록 학습받았지만, 실상 첫 번째 세계관이 현실의 본질을 더 정확하게 반영한다.
권력이 두 번째 세계관을 주입한 목적은 대중이 스스로 행복과 성공을 책임져야 한다고 믿고 끊임없이 노동하도록 유도하며, 타인과 연대하지 못하도록 고립시키고, 심리적 위기 시 스스로 회복하는 대신 전문가라는 권위자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데 있다.
결론적으로 이 두 세계관의 충돌은 인류가 결속된 주체적 공동체에서 권력에 의해 파편화되어 책임을 내면화하고 체제에 순응하는 고립된 단위로 변모해 온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