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7년 즉위식 당시의 빅토리아 여왕 (사진 위키피디아)
빅토리아 여왕 (Alexandrina Victoria, 1819년 5월 24일 ~ 1901년 1월 22일)은 1837년 6월 20일부터 사망할 때까지 영국과 아일랜드 연합 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의 여왕이었으며, 1876년 5월 1일부터 인도 제국의 여제(Empress of India)를 겸했다.
그녀의 63년 7개월이라는 긴 재위 기간은 영국 군주 역사상 두 번째로 긴 기간이며, 그녀의 통치 시대는 빅토리아 시대라고 불린다. 이 시대는 영국의 산업 혁명이 최고조에 달하고 대영제국의 영토가 전 세계로 확장되면서 경제적 번영과 국력 신장의 시기였다.
빅토리아 여왕의 주요 업적 및 특징
- 입헌군주제의 확립: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기간 동안 영국 왕실의 권한은 점차 축소되고 의회 중심의 입헌군주제가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그녀는 정치적인 실권보다는 국가의 상징적인 존재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 대영제국의 전성기: 그녀의 재위 기간 동안 대영제국은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정도로 강력한 국력을 자랑했다.
- 도덕적 기준 제시: 빅토리아 여왕은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제시하며 당시 사회의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녀의 가정적인 모습과 검소한 생활 태도는 영국 사회의 모범이 되었다.
- 왕실의 인기 회복: 이전 군주들의 방탕한 생활로 인해 실추되었던 왕실의 이미지를 회복하고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 수많은 자녀와 유럽 왕실과의 혼인: 빅토리아 여왕은 9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이들은 유럽 각국의 왕실과 결혼하여 유럽 왕가 간의 복잡한 인척 관계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그녀는 ‘유럽의 할머니’라고 불리기도 했다.
- 산업 혁명과 사회 변화: 그녀의 통치 시대는 산업 혁명의 급격한 발전과 함께 사회 구조, 경제 시스템, 과학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였다.
- 제국주의 확장: 대영제국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로 식민지 확장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빅토리아 여왕의 서거
1901년 1월 22일, 81세의 나이로 빅토리아 여왕은 사망한다. 그녀의 장례식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그녀의 죽음은 대영제국의 한 시대가 저물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여겨졌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사망은 단순히 한 나라의 군주가 세상을 떠난 사건이 아니라, 당시 세계 질서의 중심에 있었던 대영제국의 상징적인 존재의 퇴장이었기에 국제 질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빅토리아와 앨버트의 결혼식(사진:위키피디아)
빅토리아 여왕 사망이 미친 국제 질서의 주요 영향
대영제국의 상징적 통합력 약화: 빅토리아 여왕은 광대한 대영제국을 정신적으로 통합하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녀의 서거는 제국 내 민족주의 운동의 잠재적 분출을 야기하고, 자치령(Dominion)과의 관계 변화를 모색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낳는다. 그녀의 개인적인 권위와 상징성이 사라짐으로써 제국의 결속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유럽 세력 균형의 미묘한 변화: 빅토리아 여왕은 유럽 각국 왕실과 깊은 인척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일정 부분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녀의 부재는 유럽 내에서 영국의 외교적 입지에 미묘한 변화를 가져온다. 특히 그녀의 개인적인 영향력으로 유지되던 관계가 새로운 국왕 에드워드 7세의 등장으로 재조정될 필요가 있었다.
영국 외교 정책의 전환 촉진: 새로운 국왕 에드워드 7세는 어머니와는 다른 외교적 접근 방식을 취한다. 그는 전통적인 ‘영광스러운 고립’ 정책에서 벗어나 유럽 대륙 국가들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특히 1904년의 영불 협상(Entente Cordiale) 체결은 이러한 변화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서거는 이러한 정책 전환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었다.
영국-독일 관계 악화 심화: 빅토리아 여왕은 손자인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와 복잡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때로는 양국 관계의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한다. 그녀의 서거 이후, 개인적인 유대감이 사라지면서 영국과 독일 간의 제국주의 경쟁과 해군력 경쟁이 더욱 노골화되었다. 이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세기 전환기의 불안정성 증폭: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기는 제국주의 경쟁, 민족주의 고조, 기술 발전 등 국제 질서가 급변하고 불안정했던 시기였다. 오랫동안 안정의 상징이었던 빅토리아 여왕의 퇴장은 이러한 불안정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새로운 시대에 대한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심리적 영향을 미친다.
미국과의 관계 변화 및 새로운 국제 질서의 맹아: 빅토리아 여왕의 서거는 대영제국의 시대가 저물고 미국의 부상이라는 새로운 국제 질서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20세기 들어 영국은 미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며, 이는 이후 국제 질서 재편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1901년 1월 22일 빅토리아 여왕의 사망은 대영제국의 상징적인 지도력의 공백을 가져오고, 유럽 세력 균형에 미묘한 변화를 야기했으며, 영국 외교 정책의 전환을 촉진하는 등 당시 국제 질서에 광범위하고 심층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이다. 특히 20세기 초 국제 관계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새로운 질서의 등장을 알리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