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질서 재편의 신호탄 제1차 영일동맹(1902년)

영일동맹

1902년 1월 30일에 체결된 영일 동맹 문서 (일본 외무성 외교 사료관 소장)

9세기 말~20세기 초 동아시아 정세는 러시아의 남하 정책으로 인해 극도로 불안정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 완공을 계기로 만주를 점령하고, 부동항 확보를 위해 한반도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 이러한 러시아의 팽창은 영국과 일본의 이해관계와 충돌이었다..

  • 영국: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러시아의 세력 확대를 경계했으며, 극동 지역에서의 자국 이익을 보호하고자 한다.
  • 일본: 청일 전쟁 승리 이후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으나, 러시아의 방해에 직면한다. 일본은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고 한반도에서의 우위를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영일 동맹 내용

제1차 영일 동맹은 총 6개 조항과 전문으로 구성되었

  • 상호 이익 존중: 영국은 중국에서의 이익을, 일본은 중국 및 조선에서의 특별한 이익을 서로 인정한다.
  • 중립 의무: 한쪽 동맹국이 제3국과 전쟁을 벌일 경우, 다른 동맹국은 엄정 중립을 지킨다.
  • 방수 동맹: 한쪽 동맹국이 2개국 이상의 국가와 전쟁을 벌일 경우, 다른 동맹국은 공동으로 전투에 참여하여 돕는다.
  • 상호 협의: 양국은 자신들의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 상호 협의한다.
  • 별도 협정 금지: 양국은 상호 협의 없이 본 동맹의 원칙에 반하는 별도의 협정을 제3국과 체결하지 않는다.
  • 유효 기간: 동맹의 유효 기간은 5년으로 한다.

국제 질서에 미친 영향

제1차 영일 동맹은 20세기 초 동아시아 및 국제 질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 러시아의 동아시아 팽창 견제: 영일 동맹은 러시아의 남하 정책에 대한 강력한 견제 세력으로 작용한다. 영국의 지원을 확보한 일본은 러시아에 대해 더욱 강경한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된다.

  • 일본의 국제적 위상 강화: 변방의 신흥 강국이었던 일본이 세계적인 강대국인 영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군사 동맹을 체결했다는 사실은 일본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격상시키는 계기가 된다. 이는 일본이 서구 열강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음을 의미다.

  • 러일 전쟁 발발의 주요 요인: 영일 동맹은 일본에게 러시아와의 전쟁을 감행할 수 있는 심리적 및 외교적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영국이 중립을 지키거나 심지어 지원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일본은 러시아와의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다. 결국 영일 동맹 체결 후 2년 뒤인 1904년 러일 전쟁이 발발한다.

  • 동아시아 질서 재편의 촉진: 영일 동맹은 전통적인 중화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가 서구 열강과 신흥 강국 일본의 힘겨루기 장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가속화했다.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각축전이 더욱 심화되는 계기가 된다.

  • 영국의 고립 정책 수정: ‘영광스러운 고립’을 표방하며 유럽 대륙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던 영국이 일본과 동맹을 맺은 것은 전통적인 외교 정책의 중대한 변화를 의미한다. 이는 독일의 부상 등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영국이 더 이상 고립 정책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음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제1차 영일 동맹은 러시아의 동아시아 팽창을 견제하고 일본의 국제적 위상을 강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곧 러일 전쟁 발발의 주요 요인이 되었으며, 동아시아 질서 재편을 촉진하고 영국의 외교 정책 변화를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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