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ICBM 기술 원천,우크라이나 유즈마쉬와 유즈노예 설계소

국제전략연구소(IISS) 분석가들은 화성-14가 우크라이나 유즈노예 설계소의 기술을 사용했다고 분석했다.

유즈마쉬를 주목해야 하는 다른 이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장기적 전쟁 수행 능력을 무력화 하기 위하여 새로 개발한 IRBM 오레슈니크로 유즈마쉬 우주항공 산업단지를 폭격해다. 

이 산업 단지내에 있는 유즈마쉬와 유즈노예 설계국은 구소련 로켓설계 및 생산의 핵심 시설이었다. 이 시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러시아의 기술 협력으로 발사한 나로호 1단 발사체의 생산한 곳이며, 북한에 미사일 기술을 전수한 곳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의심 받는 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는 풍부한 광물자원과 흑토지대로 불리는 비옥한 토지를 보유한 나라다. 소련으로부터 물려받은 강력한 산업 기반과 더불어 우크라이나는 해체 후 가장 발전된 국가 중 하나가 될 자격이 있었다. 우크라이나가 제조업을 통해 부유한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결코 가난해 질 수 없었던 나라가 다음의 이류로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 했다. 

맹목적 개혁은 과두정치인들에게 부의 집중화를 가져왔고 부정부패가져왔다. 과두정치인과 이들과 결탁한 서구 자본에 국토의 상당부분을 내주어야 했다. 

길거리로 내몰린 로켓 및 핵 기술자

갑작스러운 소련 붕괴로 생긴 국가들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려야 했다. 그중에서도 우크라이나가 가장 심각했다. 러시아의 인플레이션은 1992년 2,500%로 고점을 찍었고, 벨라루스는 1994년에 2,200%로 정점을 찍었지만, 우크라이나는 2023년 10,000%나 되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시련이 찾아온 것이다.

쏟아져 나온 대량살상무기 전문가

소련의 붕괴로 찾아온 갑작스럽게 찾아온 자유는 고물과 뿐만아니라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대량 실업이라는 자유에 대한 대가도 선물 했다.  우크라이나의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우크라이나 과학기술센터의 책임자인 커티스 벨라작(Curtis Bjelajac)은 우크라이나에서만 대량살상무기 전문가 15,000 ~ 20,000명이 실직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러시아의 실직사 수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중년 또는 노년층이었기 때문에 민간부분이나 해외로 나가는 것도 쉽지 않은 상태였다. 

유즈마쉬 로켓공장(사진 :유즈마쉬)

유즈마쉬에 찾아온 재앙

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를 물리친 붉은 군대를 도우려고 설립된 유즈마쉬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은 “사탄(Stan)”이라는 코드명으로 대륙간타도미사일(ICBM) 개발한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최대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냉전 종식으로 그런 무기의 수요는 줄어들었다. 미국과 러시아의 압력으로 우크라이나는 1994년 소련으로부터 물려받은 핵탄두 무기고를 포기하기로 했으며, 그 핵탄두를 운반하는 탄도 미사일 무장도 해제하기고 약속한다.

이러한 군축 합의는 유즈마쉬에는 재앙이었다. 미사일 수요가 줄어들면서 수천 명의 엔지니어가 일자리를 잃어야 했다. 트랙터와 트롤리버스, 그리고 위성 발사체 제작 등의 일부 공장만 가동되었다.

유즈마쉬에서 생산하는 로켓의 수요처는 대부분 러시아였다. 하지만 2014년 두나라간의 갈등으로 인해 경제교류가 중단되었고 특히 로켓 기술과 같은 우주항공 산업에 대한 러시아의 주문은 완전히 중단되었다.  이로 인해 유즈마시는 종업원의 임금을 삭감해야 했고, 배전반과 같은 간접부서 직원 대부분을 해고해야 했다.

북한의 첫 핵실험으로 충격

2006년 10월 9일 북한의 첫 핵실험

북한의 핵기술 공급처

핵무기를 실전 배치하기 위해서는 핵탄두 제조 기술과 핵탄두를 운반할 수 있는 발사체 기술이 필한다. 당시 미국은 초기 단계의 우라늄 농축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고, 미국 본토까지 이 핵무기를 운반할 발사체 기술은 없었다고 보았다. 2006년 북한은 미국의 이러한 예상을 뒤집고 핵실험을 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라늄 농축 기술은 파키스탄에서 배웠고,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의 기술 없이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북한의 미사일 기술 습득 노력

북한의 미사일 기술 습득 노력은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소련의 붕괴 직후 수만 명의 실직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과학자들이 있었다. 실직한 이 두 나라의 과학자들을 상대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다. 미사일 부품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Time의 탐사 보도에 따르면 2002년 우크라이나 고철장에서 소련의 탄도 미사일 부품 6톤이 발견되었고, 시베리아 동부 쓰레기 매립장에서 지대공 미사일 3세트가 발견되었을 정도로두 나라의 미사일 관리가 엉망이었다. 

북한 기술자와 유즈마쉬

2011년 벨라루스 무역대표단 일원으로 방문한 북한 간첩 이태길은 유즈마쉬 인근 창고에서 소형카메라로 미사일 관련 기술이 담긴 보고서를 촬영하다 체포되어 8년 형을 선고받는다.

비록 우크라이나 보안국의 함정 작전이었기는 하지만, 북한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핵과 미사일 기술을 확보하기 위하여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8년 유즈마쉬에서 은퇴한 로켓과학자 이크토르 모이사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2000년 초분부터 북한 사람들이 은퇴후 그가 설립한 연구소에 많이 찾아왔다고 했다.

그의 개인 연구소에서는 유즈마쉬와 같은 로켓 부품들이 있었따. 북한 사람들은 관광비자로 입국했지만 로켓기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그들이 북한 스파이 였을 것일고 추정했다.  

ICBM 화성-14 발사

북한 사람들이 다녀간 후 정확히 8개월째인 2017년 7월 북한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4 발사에 성공한다. 화성-14는 북한이 최초로 시험 발사한 액체연료 기반의 신형 미사일이다. 북한 발표에 따르면 사거리가 10,000km로 미국 서부를 공격할 수 있다고 했다. 

국제전략연구소(IISS) 분석가들은 화성-14가 우크라이나 유즈노예 설계소의 기술을 사용했다고 보도 한다. 자유유럽방송뉴욕타임스 등 서방 언론은 일제히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우크라이나와 연루되어 있음을 보도 한다. 

소련 RD-250 엔진 사용

2017년 4월 화성-14 발사 전 UN 전문가 패널은 화성-12에 사용된 엔진이 소련 시대의 이중 연소실 엔진인 RD-250에서 바생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화성-14는 화성-12의 개량형이다. 

RD-250과 화성 12 엔진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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