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타 피오르드(Alta Fjord)
알타 피오르드(Alta Fjord)
1967년부터 연구된 트롬쇠 지방의 알타 피오르드 암각화는 발견 즉시 세계 최고의 암각화 유적지로 분류되었다. 북극권에 가까운 이 암각화는 북반구에서 6,200년에서 2,500년 전의 인간 활동을 보여주는 귀중한 증거이다. 알타 피오르드 안쪽(Kåfjord, Hjemmeluft, Storsteinen, Amtmannsnes, Transfarelvdalen) 5개 지역의 45개 장소에는 수천 개의 암각화와 그림이 있다. 이곳 알타에서는 북부 유럽의 다른 어느 곳보다 수렵 채집민이 만든 암각화가 더 많이 발견된다.[1]
알타 피요르드 지도
▶ 우측상당에서 위성지도, 혹은 지명을 선택 할 수 있습니다. 줌인하면 사이트의 실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배타고 고기잡이 나가는 모습이 그려진 암각화
바위에 새겨진 것
암각화에는 순록, 엘크, 곰, 개와 늑대, 여우, 산토끼, 거위, 오리, 백조, 가마우지, 넙치, 연어, 고래 등 다양한 동물이 새겨져 있어 당시의 환경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또한 보트 타기, 사냥, 덫 설치, 낚시 장면은 물론 춤과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묘사되어 있어,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사냥하는 남자
화살통
그물망
사냥하는 모습이 새겨진 암각화
대표적인 암각화에서는 앞으로 뿔이 튀어나온 순록과 새끼, 사슴, 그리고 목과 머리가 더 육중한 엘크 등의 동물과 어망을 볼 수 있다. 바위에 새겨진 이 동물들의 모습은 단순화되어 있지만, 각 동물의 특징을 잘 묘사하고 있다. 또한 활을 든 남자가 순록을 사냥하는 장면도 보인다.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활로 사슴, 순록, 엘크를 사냥하고 그물로 물고기를 잡아 식량을 조달했음을 알 수 있다. 활과 화살을 든 남자의 묘사를 자세히 보면, 어깨끈이 달린 화살통이 함께 그려져 있다. 특히 활은 두 개의 줄을 가진 이중 활 형태로 눈에 띄는데, 안쪽 줄이 활시위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암각화의 분포는 고도와 관련이 깊다. 가장 오래된 암각화가 일반적으로 가장 높은 곳에 있고, 가장 최근의 암각화가 현재 해수면에 가장 가깝게 위치한다. 그 높이 차이는 약 26m에 이른다.
알타 박물관 근처에서 알타 피오르드(Alta Fjord, Altafjorden)를 바라본 풍경(사진: Ralph Frenken 2012)
참고로 이 피오르드의 수심은 해안가가 약 60m이며, 바다 쪽으로 갈수록 400m 이상으로 급격히 깊어진다. 또한 이곳은 1943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전함 티르피츠와 샤른호르스트의 정박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첫 발견: 삐삐 돌 이야기
알타에서 발견된 최초의 암각화는 ‘삐삐 돌(Pippi Stone)’로, 1950년경 농부 프레드릭 팔센(Fredrik Falch)이 밭을 갈던 중 우연히 발견했다. 이 돌은 알타 피오르드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랑네스(Langnes) 농장의 감자밭에 있었으며, 약 4,000년에서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발견 이후 다음 암각화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20년이 더 걸렸다.
삐삐돌
사진: 랄프 프렌켄 2012
고고학자들은 이 돌에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Astrid Lindgren)의 유명한 동화 주인공 ‘삐삐 롱스타킹’의 이름을 따서 ‘삐삐’라는 별명을 붙였다. 책 표지에 그려진, 양쪽으로 땋아 올린 삐삐의 머리 모양이 이 암각화에 새겨진 사람의 모습과 우연히 닮았기 때문이다.
곤봉든 사람
또 다른 암각화에는 세 명의 인물이 묘사되어 있다. 왼쪽 아래 인물은 볼라(bola)나 곤봉을, 오른쪽 인물은 한 손에 새를, 다른 한 손에는 엘크 머리 장식 지팡이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곤봉든 남자(왼쪽 아래)
시로코고로프(Shirokogoroff, 1935)에 따르면, 이 지팡이는 샤먼 의복의 일부였으며, 영적 여정이나 상층 세계와 교류하는 데 사용되었다. 엘크 머리 모양을 한 이 지팡이는 북부 페노스칸디아(Fennoscandia)의 여러 암각화 유적지에서 발견되는데, 대표적으로 알타(Alta), 카노제로(Kanozero), 넴포르센(Nämforsen), 비그(Vyg) 등이 있다. 알타에서는 주로 엘크와 함께, 넴포르센에서는 곰과 함께 묘사되기도 한다. 이 지팡이는 의식용 도구로 해석되지만, 실제 사냥에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2]
배를 탄 사람들
이 복잡한 구도의 암각화는 전경에 순록 여러 마리, 곰 한 마리, 그리고 뱃머리와 선미가 높은 배 한 척을 묘사하고 있다. 배에서는 여섯 개의 막대가 튀어나와 있는데, 이는 배의 뼈대 끝부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유사한 배 그림에서는 이 막대들 사이에 배에 탄 사람들이 명확하게 그려져 있다.
배를 탄 사람
배경에는 볼라(bola)로 추정되는 물체, 곤봉으로 사슴을 사냥하는 남자, 어깨에 무언가 박힌 사슴, 그릇에서 쏟아져 나오는 듯한 여러 개의 점, 가시 돋친 머리 모양의 상징, 그리고 아홉 명의 사람이 타고 있는 또 다른 배 등이 그려져 있다.
일부 학자들은 여기서 보이는 점들을 곰의 발자국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는 곰이 당시 사람들의 신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물을 던지는 사람
이 암각화는 사슴 머리 모양으로 장식된 뱃머리를 가진 작은 배에 두 남자가 타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활을 들고 물고기를 사냥하고 있으며, 다른 한 명은 그물을 던지고 있다. 활을 든 인물은 크기가 작아 어린아이로 추정된다.
이끼 제거 전
이끼 제거 후
또한 배의 뼈대가 선체 위로 뻗어 나온 듯한 기둥 모양의 구조물도 볼 수 있다. 이는 노나 낚싯줄, 그물을 고정하기 위한 지지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암각화는 이끼 제거를 통해 해석이 달라진 대표적인 사례이다. 과거에는 인물의 얼굴 일부로 여겨졌던 부분이, 이끼를 제거하고 난 뒤에는 그림이 아닌 암석 본래의 결이나 흠집으로 밝혀졌다.
엘크와 남자
다음음 암각화는 남자와 엘크를 묘사한다. 남자는 ‘구부러진 곤봉’으로 보이는 도구를 사용하여 엘크의 머리, 특히 코 부분을 치려는 듯한 모습이다. 이 곤봉의 구부러진 부분에는 돌출부가 있으며, 그 모양은 엘크의 머리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엘크 아래와 그 오른쪽에는 예르데(Gjerde, 2010)에 의해 함정으로 해석된 구덩이가 묘사되어 있다.[4]
엘크와 남자
이 ‘구부러진 곤봉’은 샤먼의 지팡이로도 해석된다. 시로코고로프(Shirokogoroff, 1935)에 따르면, 이 지팡이는 샤먼 의복의 일부로 영적 세계와 교류하는 데 사용되었다. 통구스족 사이에서는 ‘말’ 또는 ‘순록’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지팡이는 의식용 도구이면서 동시에 실제 사냥에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5]
실제로 엘크 머리 모양 지팡이는 초기 석기 시대와 초기 금속 시대에 해당하는 러시아 북서부 지역의 무덤에서 출토되기도 했다. 이는 샤먼과 같은 의례 지도자의 소유물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암각화에서 오랜 기간 등장하는 모티프인 것처럼, 엘크 머리 지팡이 역시 매장 풍습과 오랫동안 연관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엘크와 순록 머리 조각
엘크나 순록의 머리가 조각된 막대와 암각화에 묘사된 유사한 유물은 중석기 시대부터 초기 금속기 시대에 이르기까지 북유라시아 선사 시대 주민들의 사회 구조와 신화를 재구성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1. 올레니 오스트로프 남부 매장지, 2. 시기르 습지, 3, 4. 올레니 오스트로프 매장지(매장지 16-2 및 19-4), 5. 볼로다리, 6. 안닌 오스트로프, 7. 슈벤토지 3, 8. 토크 강 매장지.
이 유물들은 매우 오랜 기간, 광대한 지역에 걸쳐 나타난다. 조각된 막대는 기원전 7천년기부터 2천년기 후반까지, 암각화 속 묘사는 기원전 6천년기부터 3천년기까지 발견된다. 분포 지역 또한 북유럽에서 우랄산맥 너머까지 이른다. 이는 유라시아 삼림 지대의 여러 고고학 문화권에 걸쳐 공통된 세계관이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조각품은 머리와 막대 사이의 각도가 90도에서 120도를 이루며, 드물게는 150도에 이르기도 한다. 모든 작품은 매우 정교하게 제작되었으며, 표면에는 광택이 나 있다. 길이는 10cm에서 47cm까지 다양하며, 현재까지 발견된 총 48점의 작품은 크기에 따라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6]
엘크 머리 뿔 지팡이
리투아니아 신석기 예술의 가장 훌륭한 사례 중 하나는 1972년경 슈벤토이(Šventoji)의 세 번째 정착지에서 발견된 두 점의 곡선형 엘크 뿔 지팡이이다. 이 지팡이들의 꼭대기에는 엘크 머리가 조각되어 있다. 두 점 중 한 지팡이에서만 동물의 종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데, 혹처럼 튀어나온 코, 돌출된 입술과 눈, 콧구멍 등 엘크 머리의 특징적인 비율과 세부 묘사가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1989년에는 슈벤토이 4B 정착지에서 길이가 14cm에 불과한 평평한 지팡이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이 지팡이의 곡선형 꼭대기에는 사슴과에 속하는 동물의 도식적 실루엣이 새겨져 있다. 슈벤토이의 유적지는 기원전 4000년에서 3000년 사이로 추정되며, 나르바(Narva) 문화의 것으로 여겨진다.
1, 2, 3 Olenii Ostrov, 4, 5 Šventoji 3B, 6 Šventoji , 7 Zvejnieki, 8 Turganika
그러나 같은 유형의 지팡이 세 점이 러시아 카렐리야(Karelia)의 올레니 오스트로프(Oleny Ostrov) 매장지에서도 발견되었는데, 이는 기원전 7천년기 후반에서 5천년기 중반 사이의 유적으로 추정된다.
또한 지질층과 꽃가루 분석에 따르면, 핀란드 로바니에미(Rovaniemi) 근처 레흐토예르비(Lehtojärvi) 유적지에서 발견된 나무로 만든 엘크 머리 조각 역시 중석기 시대의 것으로 분류된다.
라트비아의 즈베이니에키(Zvejnieki) 매장지의 274-278번 무덤에서도 약간 다른 곡선을 가진 작은 지팡이 한 점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이 지팡이는 빗살무늬토기 문화(Comb Ware culture)와 관련이 있으며, 그 연대는 기원전 4000년경으로 추정된다.
다른 엘크머리 작품
특색있는 암각화
용변을 보는 엘크와 어린엘크 그리고 발밑에 뱀이 있는 듯한 특이한 암각화도 있다.
바위에 새겨진 집단 사냥
이 암각화는 네 명의 인물이 협력하여 사냥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중앙의 한 명은 샤먼으로, 손에는 술 장식이 달린 북을 들고 있다. 그의 앞과 반대편에는 두 명의 사냥꾼이 각각 엘크 머리 장식 지팡이를 들고 사냥감에 접근하고 있다. 그림의 아래쪽에는 또 다른 사냥꾼이 볼라나 작은 지팡이를 든 채 다른 동물을 사냥하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 장면 주변에는 활과 화살을 들고 사냥터로 향하는 또 다른 인물의 모습도 보인다.
집단사냥
다음 암각화의 한쪽에서는 볼라나 엘크 지팡이를 든 남자가 사슴으로 추정되는 동물을 사냥하고 있다. 다른 쪽 아래에는 또 다른 남자가 새끼를 포함한 동물 무리를 몰고 있는데, 이 역시 집단 사냥의 일부로 해석된다.
볼라
엘크 지팡이
암각화에 담긴 우주론적 낚시
다음 암각화는 뱃머리와 선미가 높고, 물고기가 걸린 낚싯줄이 길게 늘어진 배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제작자는 물고기의 크기뿐만 아니라, 사용된 낚싯줄의 길이 또한 강조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어부들은 낚싯줄과 그물을 만드는 데 상당한 시간과 자원을 투자했을 것이다.
언뜻 보면 엘크의 모습은 배나 물고기와 관련이 없어 보여, 다른 시기에 다른 제작자가 그린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구성을 살펴보면, 이는 더 복잡한 이야기의 일부일 가능성이 있다.
배
낛시줄줄
물고기
예르데(Gjerde, 2010)는 알타의 낚시 장면이 항상 수직으로 묘사된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실제 물고기가 사는 깊이를 반영하기 위함이다. 그는 이 그림(베르크북텐 4번지)이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고대인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한다.[4]
그의 해석에 따르면, 상층 세계에는 순록과 ‘목걸이’가, 중간 세계에는 배를 타고 낚시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하층 세계에는 넙치와 엘크가 존재한다. 이는 심해에서 이루어지는 넙치 낚시라는 현실적인 측면과 더불어, 엘크를 하층 세계의 일부로 인식하는 신화적 세계관을 동시에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이 그림에 묘사된 낚싯줄은 알타의 암각화 중 가장 길게 표현되어, 깊은 바다에서의 조업을 상징한다.
암각화의 연대 추정
알타의 암각화는 빙하가 깎아낸 해변의 바위 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 지반이 계속 융기하면서 새로운 암반이 드러났고, 고대인들은 이 바위들을 조각을 위한 캔버스로 사용했다. 이 때문에 가장 오래된 암각화는 현재 해수면보다 가장 높은 곳에 있고, 후대에 만들어진 암각화일수록 더 낮은 곳에 위치한다.
이러한 분포는 암각화의 연대를 추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해발 고도를 기준으로 트롬쇠 대학교 박물관의 크누트 헬스코그(Knut Helskog) 교수는 알타 암각화의 시기를 기원전 4200년에서 서기 200년 사이로 추정했으며, 양식의 변화에 따라 5단계로 구분했다.
헬스코그(Helskog)의 연대 구분
- 1단계: 기원전 4200–3300년
- 2단계: 기원전 3300–1800년
- 3단계: 기원전 1800–900년
- 4단계: 기원전 900–100년
- 5단계: 기원전 100년–서기 200년
이후 얀 마그네 예르데(Jan Magne Gjerde)는 2010년 박사 학위 논문에서 기존 추정보다 약 천 년 더 빠른 연대를 제시했다.
예르데(Gjerde)의 연대 구분
단계: 기원전 5200–4200년
2단계: 기원전 4200–3000년
3단계: 기원전 3000–2000년
4단계: 기원전 1700–1200년
5단계: 기원전 1100–200년
띠 모양 분포 (밴딩 현상)
알타 암각화가 고도에 따라 띠 모양(Banding)으로 분포하는 현상에는 간단한 이유가 있다. 계절이나 지상의 눈 유무와 관계없이, 만조와 간조 사이의 영역인 조간대(潮間帶)는 항상 암각화를 제작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따라서 특정 시기에 제작된 암각화는 조수가 눈을 녹여서 드러난 물가의 좁은 영역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피오르드 밴딩현상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마지막 빙하기 말의 지각 변화에 있다. 거대한 빙상이 녹아 없어지자 그 무게에 눌려있던 땅이 ‘반등’했고, 이 지역은 ‘지각평형 현상(isostasy)’에 의해 서서히 융기하기 시작했다. 빙상은 약 2만 년 전에 가장 두꺼웠으며, 대부분의 융기는 1만 6천 년 전에서 1만 년 전 사이에 일어났다. 빙하가 후퇴하면서 해안선도 함께 융기했으며, 이 현상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특정 시기의 수렵·채집 집단은 당시 해수면에 인접한 제한된 암반, 즉 (짧은 여름을 제외하면) 연중 작업이 가능했던 조간대(潮間帶)[3]에서만 암각화를 제작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땅이 더 융기함에 따라 다음 세대는 더 낮아진 새로운 조간대에 작품을 남겼고, 이 과정이 반복되어 고도에 따른 띠 모양 분포가 만들어졌다
조간대 선택의 또 다른 이유와 보존 문제
여름에도 조간대를 선택한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이끼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끼는 암석 표면에서 매우 빠르게 자라기 때문에 암각화를 새기는 작업을 어렵거나 불가능하게 만든다. 조간대를 작업 공간으로 사용함으로써, 고대인들은 눈과 이끼가 없는 깨끗한 암석이라는 캔버스를 확보할 수 있었다.
실제로 1970년대에 예멜루프트(Hjemmeluft)와 암트만스네스(Amtmannsnes)의 암각화가 발견되었을 때, 표면은 두꺼운 토사와 잔디로 덮여 있었다. 이를 제거하자 이끼 없는 깨끗한 암석 표면과 선명한 암각화가 드러났다. 당시 연구자들은 이끼로 덮인 다른 표면들도 문질러 닦아냈다. 하지만 몇 년 후 이끼는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고, 세기가 바뀔 무렵에는 암각화의 상당 부분이 다시 이끼로 덮였다.
이끼 제거 전
이끼 제거 후
이끼를 제거하기 위해 에탄올이 주로 사용되었다. 1999년 문서화 작업의 일환으로 일부 암석 표면을 에탄올로 세척했으나, 당시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자 해당 표면의 이끼는 완전히 제거되었다. 에탄올은 즉각적인 효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사용량이나 처리 방식에 따라 이끼가 완전히 제거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2003년부터 예멜루프트 암각화에 에탄올이 체계적으로 사용되면서 암석 표면의 세부적인 묘사까지 훨씬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에탄올을 이용한 이끼 제거 방식은 암석에 미칠 수 있는 유해성과 시각적, 윤리적 문제로 인해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보존 방법이다.
각주/참고문헌
1. UNESCO World Heritage Center. “Rock Art of Alta.” Accessed September 23, 2025. https://whc.unesco.org/en/list/352/.
2. Shirokogoroff S., 1935, Psychomental Complex of the Tungus, London: Kegan Paul, Trench, Trubner.
3.조간대(潮間帶)**란 밀물 때 바닷물에 잠기고 썰물 때 드러나는 해안 지역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해수면이 가장 높을 때(만조)와 가장 낮을 때(간조)의 사이 공간을 가리킨다.
<해설>
땅이 솟아오르면 이전에 조간대였던 곳은 더 이상 바닷물이 닿지 않는 육지가 된다. 그러면 해수면의 높낮이에 따라 그보다 아래쪽에 새로운 조간대가 형성된다. 고대인들은 이처럼 시대에 따라 변하는 조간대를 따라 암각화를 남겼고, 이것이 띠 모양으로 분포하게 된 것이다..
4. Gjerde J., 2010, Rock art and Landscapes: Studies of Stone Age rock art from Northern Fennoscandia Dissertation for PhD, University of Tromsø, July 2010
5. Shirokogoroff S., 1935, Psychomental Complex of the Tungus, London: Kegan Paul, Trench, Trubner.
6. Kashina, E. and Zhulnikov, A., 2011, Rods with Elk Heads: Symbol in Ritual Context, Estonian Journal of Archaeology 2011, 15, 1, 1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