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9월 8일 미 육군 제7보병사단이 일본의 공식 항복을 받기 위해 인천항에 상륙하고 부평 수산 비행장을 점유하는 과정을 기록한 영상 분석이다. 오키나와에서 출발한 미군이 한반도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과 해방 직후 권력 이양이 시작되던 역사적 현장을 전문가의 시선으로 정리했다.
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이후 한반도 이남의 일본군 무장 해제와 행정권 인수를 위해 미군이 움직였다. 태평양 전쟁의 격전지였던 오키나와(Okinawa)에 주둔하던 XXIV Corps (제24군단) 예하 U.S. 7th Infantry Division (미 제7보병사단)이 그 선봉에 섰다. 이 영상은 이들이 인천항에 도착하여 한반도의 통치권 인수를 시작하는 역사적인 첫걸음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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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 비행장(Suizan Airdrome)의 점유와 전략적 가치
미군은 인천에 상륙함과 동시에 주요 전략 거점들을 확보했다. 그중 핵심적인 장소가 현재 인천 부평구 캠프 마켓(Camp Market) 부지에 위치했던 수산 비행장(Suizan Airdrome, 水山飛行場)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육군 조병창과 인접했던 이곳은 경성과 인천을 잇는 보급로의 안전을 확보하고 원활한 공중 통신망을 구축하기 위한 요충지였다.
기록물에는 비행장에 전개된 미군 항공기와 일본군으로부터 시설을 인계받는 장면이 상세히 담겨 있다. 해방 이후 이 부지는 미군 기지로 장기간 활용되다가 최근에야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와 부평공원과 생태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존 하지 중장의 도착과 USS Auburn (USS 어번)
1945년 9월 8일 오후, 미 군정의 수장인 John R. Hodge (존 하지) 중장은 지휘함인 USS Auburn (USS 어번)을 통해 인천항 부두에 도착했다. 영상에는 미군 상륙정(LCVP)들이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과 상륙 직후 하지 중장이 일본군 지휘관들로부터 상황 보고를 받는 엄숙한 현장이 기록되어 있다.
인천항 부두에는 수많은 한국 시민이 모여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며 미군을 맞이했다. 시청 정문에 일본인 경찰과 미군 헌병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이나 일본군 장교가 미군 병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장면은 무너져가는 식민 권력과 새롭게 등장한 통치 권력이 교차하던 순간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9월 9일 조선총독부 항복식을 위한 예비 절차
9월 8일의 인천 입성은 이튿날인 9월 9일 오후 4시 경성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거행될 공식 항복 문서 조인식(Surrender Ceremony)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인천에서 일본군의 기세를 꺾고 수산 비행장 등 거점을 확보한 미군은 9일 아침 기차와 차량을 이용해 경성으로 진격했다.
이 영상은 총독부에서 일장기가 내려가고 성조기가 올라가는 역사적 대사건을 가능하게 했던 실질적인 군사 점유의 기록이다.
1945년 9월 8일~9일 주요 타임라인
| 날짜 및 시간 | 장소 | 주요 사건 |
| 9월 8일 오전 | 인천항 앞바다 | USS Auburn (USS 어번) 등 미군 함대 집결 |
| 9월 8일 오후 | 인천항 부두 | 미 제7보병사단 상륙 및 John R. Hodge (존 하지) 중장 도착 |
| 9월 8일 오후 | 부평 수산 비행장 | 미군, 전략적 요충지인 Suizan Airdrome 확보 및 점유 |
| 9월 8일 저녁 | 경성 시청 | Crump Garvin (크럼프 가빈) 준장, 일본군에 항복 절차 통보 |
| 9월 9일 오전 | 경인 국도 | 미군 본대, 서울(Keijo) 진격 및 주요 시설 확보 |
| 9월 9일 16:00 | 조선총독부 | 공식 항복 문서 조인식 거행 및 일장기 하강 |
“멈춰버린 식민지의 시간, 그리고 새롭게 흐르기 시작한 대한민국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