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들은 어떻게 대중의 상상력을 조작하여 허구를 현실로 믿게 만드는 것일까요? 그 실마리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인식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칸트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두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없는 본래의 세계인 ‘누메나’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감각을 거쳐 뇌가 재구성한 세계인 ‘현상’입니다.
💡 철학 용어, 쉽게 알아보기
누메나(Noumena, 물자체): 인간의 경험과 인식 너머에 존재하는 사물 그 자체입니다. 인간의 감각으로는 있는 그대로 파악할 수 없는 객관적 실재를 뜻합니다.
현상(Phenomena):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해석하여 받아들인 세상입니다. 우리가 매일 겪고 살아가는 현실이 바로 이 ‘현상’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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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쉬운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특정한 색안경이나 VR(가상현실) 고글을 쓰고 세상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고글 너머에 원래의 우주(누메나)가 존재하지만, 우리는 오직 감각이라는 렌즈를 거쳐 나타나는 화면(현상)만을 진실이라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심지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시간과 공간조차 원래부터 외부에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덧붙인 ‘인식의 틀’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인식의 한계를 현재 진행 중인 지정학적 위기, 이를테면 ‘이란을 둘러싼 중동의 분쟁’에 대입해 보면 그 의미가 더욱 명확해집니다. 우리가 매일 주요 언론, 유튜브, SNS를 통해 접하는 자극적인 폭발 영상, 단편적인 헤드라인, 그리고 특정 국가를 절대 선이나 악으로 규정하는 감정적인 내러티브는 결코 있는 그대로의 실체(누메나)가 아닙니다. 그것은 각국의 권력 기관과 미디어가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보의 렌즈를 깎고 편집하여 대중에게 투사하는 가공된 ‘현상’에 불과합니다.
분쟁의 기저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강대국들의 에너지 패권, 막후에서 이루어지는 은밀한 외교적 거래, 혹은 자국 내 정치적 위기를 덮으려는 지배 계층의 진짜 계산 같은 ‘객관적 실체(누메나)’는 대중의 눈이 닿지 않는 짙은 안개 너머에 감춰져 있습니다. 대중은 미디어라는 ‘인식의 고글’을 낀 채, 권력이 의도적으로 재구성한 파편화된 이미지를 분쟁의 진짜 실체라고 굳게 믿으며 분노하거나 두려워하도록 통제당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이 현실은 과연 무엇일까요?
칸트의 철학을 빌려 말하자면, 우리가 완벽하게 객관적이라고 믿는 현실은 결국 우리의 인식과 상상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즉,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세상을 구성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권력의 ‘연금술’이 작동합니다. 권력은 인간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상상력을 통해서만 현실을 인식한다는 한계를 이용합니다. 대중에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허구의 시스템을 주입하여, 그것을 너무도 당연한 현실처럼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굳게 믿어왔던 역사, 돈의 가치와 희소성, 모든 책임을 홀로 져야 하는 ‘개인’이라는 개념, 그리고 절대적이라고 여겨온 ‘민족국가’까지. 이 모든 것들은 실재(實在)하는 누메나가 아닙니다. 권력자들이 대중의 상상력을 조작해 만들어낸 허구의 개념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인식의 한계를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외부에서 주입된 상상력에 무비판적으로 끌려가는 대신, 스스로 사고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권력의 통제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해방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